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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늘 파란 하늘 같았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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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작별인사 / 김영하

by 별곰곰 2024. 2. 28.

작별인사 표지

 

김영하 작가의 문체를 좋아한다. 참 간결하고 인지하기 쉽다. 분명 생각할 것이 많고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만 어렵지 않다. 그리고 생각하게 한다. 때로는 허를 찌르는 느낌이고 때로는 뭐야 뭐야.. 뭐지??? 하고 다시 한번 읽어보게 만든다. 철학적인 내용이 내포되어 있지만 철학이라고 티 내지 않아 읽는데 부담이 없다.

서점에서 어떤 책을 읽어야 읽힐까 고민하다 어떤 내용인지도 모르고 그냥 김영하 작가 책이라는 이유로 픽 했던 것 같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나에겐 매우 좋은 선택이었고, 다시 책을 읽을 수 있겠다는 자신감과 희망이 생겼다.

​이번 출간된 '작별인사'는 사실 내용에 대해서 알고 읽은 책이 아니다. 정말 아무 정보 없이 책 표지부터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인간의 본질과 삶의 가치, 고통 등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드는 책이다. 요즘 '나'를 생각하는데 집중하고 있어서 그런지 나에게는 더없이 좋은 책이었다. 내가 어떤 상황이고 어떤 마음인가에 따라 이 책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질 것 같다 어쩌면 나중에 다시 이 책을 읽었을 때는 또 다른 생각과 느낌으로 볼 것 같다


 

무료하고 갑갑하다고만 여겼던 평온한 시간들은 실은 큰 축복이었다.
충족되지 않은 그 욕구를 의식할 때마다 그렇다. 불행하다고 생각했다. 마땅히 가져야 할 권리를 유예당하거나 박탈당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분명 바깥은 이었다.(작별인사/바깥이 이었다. P 43~44)


지금 내가 고통스럽고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이 시간들은 어쩌면 큰 축복의 시간일지도 모른다. 정의되지 않은 미래에는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모르지만 크게 어긋나 있지 않은 지금은 큰 축복의 시간일 수 있다. 현실은 늘 부족한 것 같고 더 나은 삶이 있을 것 같아 나에게 둘러싸인 유리벽을 부숴버리고 다른 일을 다른 경험 더 나아가 다른 삶을 살고 싶다는 욕구가 올라오지만 그 밖으로 나가는 게 두려워 지금의 축복의 시간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 분명 많을 것이다. 분명 바깥은 있지만 적어도 나에게 유리벽을 깨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것도 자신감 문제일까?

당장 고통받고 있지 않을 때에도 미래의 고통을 걱정하면서 또 고통을 겪었다.(작별인사/바깥이 있었다. P 45)

인간은 과거와 현재, 미래라는 관념을 만들고 거기 집착합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늘 불행한 것입니다. 그들은 자아라는 것을 가지고 있고, 그 자아는 늘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두려워할 뿐 유일한 실재인 현재는 그냥 흘려보내기 때문입니다. 다가올 기계의 세상에서는 자아가 사라지고 과거와 미래도 의미를 잃습니다.(작별인사/달마 P.160)


나이 삶은 전반적으로 우울했던 편이었는데 생각해 보면 늘 오지도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들이 많았었다. 그리고 결국 내가 걱정했던 미래는 그대로 오지 않았었다. 오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하는 건 고통이 맞는 것 같다. 그 고통에서 벗어나 지금을 살고 싶다. 지금의 내가 있어야 과거와 미래도 있는 것이니 지금의 나를 조금은 떨어진 거리에서 제대로 봐줘야 할 것 같다. 이렇게 얘기하지만.. 사실 지금을 산다는 것이 머리로 이해되는 것만큼 잘 실천되지 않는다. 과거와 현재 미래의 균형을 맞춰 사는 일은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
작별인사/사람으로 산다는 것)


 

인간에게 태어나면 인간인 것인가? 신체인가? 정신인가? 이 문장만으로 띵~ 하고 얻어맞은 느낌이었고, 어디서부터 정의하고 어디까지 생각해야 할지 갑자기 카오스에 빠져버린 것 같았다.

 

수용소 생활이 오로지 극한의 괴로움으로 점철된 것은 아니었다. 거기에도 분명 기억할 만한, 빛나는 순간들이 있었다.
(작별인사/사용감 P76)


내가 고통의 시간이라고 생각한 그 시간 속에서도 나 역시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분명 웃을 수 있는 순간들이 있었다. 너무 힘들었다고만 생각하지 말아야겠다. 반대로 너무 좋다고 생각한 그 시간에도 분명 힘듦은 있었었다.

숨을 고른 나는 수용소 건물을 내려다보았다. 그 안에 갇혀 있을 때는 수용소가 거대하고 음침한 괴물처럼 느껴졌는데, 지금은 그냥 초라하고 낡은 콘크리트 덩어리로 보였다. 그 안에서 겪은 일들도 그렇게 끔찍하게만은 느껴지지 않았다.
(작별인사/탈출 P110)


나의 이 힘든 시간들이 지난 후 이 시간들을 되돌아봤을 때, 이 시간들이 너무 괴롭게만 생각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 언젠가 힘들었던 순간들은 분명 추억거리가 될 테니 말이다. 그리고 마치 드라마를 본 것처럼 조금은 편하게 느껴지는 시점이 올 것이다.

몸 없이 정신만 있다는 것은 너무나 이상한 경험이었다. 마치 잠깐 동안 하겠다고 시작한 명상이 끝도 없이 계속되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무슨 생각이 떠오르든 그 생각을 실행할 방법이 없었고, 그러자 생각을 계속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울적해졌다. 생각, 생각, 생각. 생각에서 벗어날 방법이 전혀 없었다.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도 생각이었다.
(
작별인사/순수한 의식 P241)


이 문장을 읽으면서 우울증이 매우 심할 때의 나의 상태 같다고 느껴졌다. 생각은 생각에 꼬리를 물고 계속되고 이렇게 있으면 안 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지만 몸 전체에 납덩이를 달아 놓은 것처럼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고, 그럴수록 생각은 더 많아졌다. 이런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나를 질책하는 고통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누군가는 이 문장을 다르게 생각할 수 있지만 현재의 나에게는 나의 얼마 전의 모습 같다고 느껴졌다.

맘이 지칠 때 나의 정신은 휴식할 수 있었다. 팔과 다리가 쉴 새 없이 움직일 때, 비로소 생각들을 멈출 수 있었다는 것을 몸이 없어지고서야 깨닫게 된 것이다.(작별인사/순수한 의식 P242)

우울증에 운동이 도움이 된다는 얘기와 같은 맥락인 것 같았다. 누군가는 그동안 너무 일만 하고 피곤했으니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라고 한다. 그런데 막상 아무것도 안 하면 많은 생각들로 더 괴롭기만 하다. 그래서 블로그도 다시 시작했고, 난독증이 왔음에도 계속 책을 읽어 보려고 노력 중이니 분명 나는 좋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다시 복귀했을 때 내가 괜찮을까라는 생각은 안 하기로 했다. 만약 그때 되어서 괜찮지 않다면 괜찮아지는 방법이 뭔지 다시 생각하고 그 방향으로 나아가면 된다. (사실 이렇게 생각해도 생각은 늘 반대로 움직인다. 생각은 청개구리 같다 :( )

​그리고 마지막 철이가 비록 인간은 아니지만 끝을 받아들이고 하나의 객체로 마지막을 맞는 것은 왠지 모를 슬픔이 느껴졌다. 어쩌면 인간보다 더 인간답게 살았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나의 세상과 작별인사를 할 때 어떤 미련도 후회도 없이 마지막이라는 미래를 두렵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작별인사
김영하가 『살인자의 기억법』 이후 9 년 만에 내놓는 장편소설 『작별인사』는 그리 멀지 않은 미래를 배경으로, 별안간 삶이 송두리째 뒤흔들린 한 소년의 여정을 좇는다. 유명한 IT 기업의 연구원인 아버지와 쾌적하고 평화롭게 살아가던 철이는 어느날 갑자기 수용소로 끌려가 난생처음 날것의 감정으로 가득한 혼돈의 세계에 맞닥뜨리게 되면서 정신적, 신체적 위기에 직면한다. 동시에 자신처럼 사회에서 배제된 자들을 만나 처음으로 생생한 소속감을 느끼고 따뜻한 우정도 싹틔운다. 철이는 그들과 함께 수용소를 탈출하여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길을 떠나지만 그 여정에는 피할 수 없는 질문이 기다리고 있다. 『작별인사』의 탄생과 변신, 그리고 기원 『작별인사』는 김영하가 2019년 한 신생 구독형 전자책 서비스 플랫폼으로부터 회원들에게 제공할 짧은 장편소설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고 집필한 소설이다. 회원들에게만 제공하는 소설이라는 점은 『살인자의 기억법』 발표 이후 6년이나 장편을 발표하지 못했던 작가의 무거운 어깨를 가볍게 해주었다. 작업은 속도감 있게 진행되어 2020년 2월, 『작별인사』가 해당 서비스의 구독 회원들에게 배송되었다. 분량은 200자 원고지 420매 가량이었다. 원래 작가는 『작별인사』를 조금 고친 다음, 바로 일반 독자들이 접할 수 있도록 정식 출간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2020년 3월이 되자 코로나19 바이러스 팬데믹이 시작되었다. 뉴욕의 텅 빈 거리에는 시체를 실은 냉동트럭들만 음산한 기운을 풍기며 서 있었고, 파리, 런던, 밀라노의 거리에선 인적이 끊겼다. 작가들이 오랫동안 경고하던 디스토피아적 미래가 갑자기 도래한 것 같았다. 책상 앞에서 가벼운 마음으로 썼던 경장편 원고를 고쳐나가던 작가에게 몇 달 전에 쓴 원고가 문득 낯설게 느껴진 순간이 왔다. 작가는 고쳐쓰기를 반복했고, 원고는 점점 2월에 발표된 것과는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여름이면 끝날 줄 알았던 팬데믹은 겨울이 되면서 더욱 기승을 부렸고, 백신이 나와도 기세가 꺾이지 않았다. 세계보건기구 WHO가 팬데믹을 선언한 지 2년이 지나서야 작가는 『작별인사』의 개작을 마쳤다. 420매 분량이던 원고는 약 800매로 늘었고, 주제도 완전히 달라졌다.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과 인간이 아닌 존재들을 가르는 경계는 어디인가’를 묻던 소설은 ‘삶이란 과연 계속될 가치가 있는 것인가?’, ‘세상에 만연한 고통을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 것인가’, ‘어쩔 수 없이 태어났다면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어야 할 것인가’와 같은 질문을 던지는 이야기로 바뀌었다. 팬데믹이 개작에 영향을 주었을 수도 있고, 원래 『작별인사』의 구상에 담긴 어떤 맹아가 오랜 개작을 거치며 발아했는지도 모른다. 그것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마치 제목이 어떤 마력이 있어서 나로 하여금 자기에게 어울리는 이야기로 다시 쓰도록 한 것 같은 느낌이다. 탈고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원고를 다시 읽어보았다. 이제야 비로소 애초에 내가 쓰려고 했던 어떤 것이 제대로, 남김 없이 다 흘러나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_’작가의 말’에서 전면적인 수정을 통해 2022년의 『작별인사』는 2020년의 『작별인사』를 마치 시놉시스나 초고처럼 보이게 할 정도로 확연하게 달라졌다. 그리고 김영하의 이전 문학 세계와의 연결점들이 분명해졌다. 제목을 『작별인사』라고 정한 것은 거의 마지막 순간에서였다. 정하고 보니 그동안 붙여두었던 가제들보다 훨씬 잘 맞는 것 같았다. 재미있는 것은 ‘작별인사’라는 제목을 내가 지금까지 발표한 다른 소설에 붙여 보아도 다 어울린다는 것이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검은 꽃』, 『빛의 제국』, 심지어 『살인자의 기억법』이어도 다 그럴 듯 했을 것이다. _’작가의 말’에서
저자
김영하
출판
복복서가
출판일
2022.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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