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늘 파란 하늘 같았으면 좋겠어
Reading

[Book] 환승 인간 /한정현

by 별곰곰 2024. 2. 23.
 
환승 인간
 

2022년 나는 나도 모르게 우울함에 잠식당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전부터였을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자각하기 시작한 건 2022년이었다. 나는 내가 우울한 기분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고 그냥 사람 사는 거 다 비슷비슷하지 않나 싶었다. ‘나는 너무 행복해~’라고 느끼며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SNS의 화려하고 여유로워 보이는 타인의 삶에서도 진실됨을 느끼지 못해 흔히들 말하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문제가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된 계기는 잠을 못 잤고, 밥을 먹지 못했고, 몸 상태는 피폐해져 갔으며, 글이 읽히지 않았다. 그러면서 때때로 몰려오는 자괴감과 불안감에 시달렸다. 
많은 양의 문서를 봐야하는 나의 직업 특성상 글이 안 읽히는 것은 큰 문제였다. 그걸 느끼는 그 순간 더럭 겁이 났다. 뭔가 끝나버릴 것 같은 공포감이 들었다. 그래서 회사에서 일을 하다 말고 뛰쳐나가 병원으로 향했다. 내가 받은 진단명은 우울증.. 그것도 아주 심한 우울증.. 시급한 치료가 필요한 단계라고 했다. 
이렇게 치료를 시작하고 난 뒤 3개월 뒤 아주 다행스럽게도 쉬운 책들은 읽히기 시작했다. 그 때쯤 읽었던 책 중 하나인 '환승 인간'.. 독서 노트를 보니 이 문구를 왜 표시해 두었지? 라는 의문이 드는 구절들이 많다. 생각해 보니 이때 우울함에 잠식당해 내가 내가 아닌 상태였었다. 

환승 인간 앞/뒤 커버


프롤로그

하지만요, 그거 아세요? 모든 피해 사실이 오히려 자신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 또한 피해자의 증상 중 하나예요.

자존감이 지하 깊은 동굴까지 내려가 있던 그 때의그때의 나는 그때의 모든 나쁜 일들이 나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회사에서 뭔가 처리 안 된 일들을 보면서도 내가 무능했기 때문이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심지어 운전을 하면서도 모든 잘 못 된 상황들은 내 탓이라고 느껴졌었다. 



누군가가 보기엔 그녀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나 읊은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녀가 시 '씩이나' 읊은 것..

그 당시 무엇을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었던 나는 남들이 봤을 때 '뭘 저정도 일 갖고.. '라고 생각하는 일들도 그것 '씩이나' 하고 있는 상태였다. 나의 상태를 그대로 글로 옮겨 놓은 것 같아 울컥 울음이 났던 글이었다.

 

안정되지 못한 환경의 사람은 더 자주 직업을 바꿀 수밖에 없고, 이름을 바꿀 수밖에 없고 일상이라는 것이 없을 만큼 자주 삶을 바꿀 수밖에 없다. 환승하는 삶. 환승할 수밖에 없는 삶. 좋아하는 것에서 좋아하는 것으로 환승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좋아해야만 하는 것을 만들고 좋아하게 만들어야 살아지는 삶도 있다.

안정되지 못한 환경이란 비단 경제적인 것, 인간관계의 흔들림만 있는 건 아닐거다. 불안해하는 마음, 잘 못된 모든 일을 내 탓으로 만들며 매 순간 칼로 나를 찌르는 듯한 마음은 어떤 것 보다 안정되지 못한 환경이었다. 계속 무너지는 나에게 이렇게 살면 안 된다고 스스로 채찍질을 하며, 늘 모든 것에 열정적이 여하고 좋아하는 뭔가는 있어야 한다고 스스로 압박감을 주고 있었다. 그리고 심지어 그걸 잘 해내야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것조차도 나를 무너뜨리게 하는 마음이었다. 결국 나는 그렇게 살아지지도 못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많은 글귀들에 밑줄을 그으며 읽었는데 그 중 간단하게 메모를 남겼던 글 귀가 있다. 
 

기꺼이, 행복한 우리들의 붕괴의 시간

상대를 너무 배려하기 시작하면 나 자신의 균형이 붕괴되기 시작한다. 행복한 시간이란 결국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나의 균형을 잡는 것. 내 안으로의 붕괴를 이끌어내는 것. 타인의 등을 통해서가 아니라 내 안의 균형으로 일어서는 것 아니었을까. 그 균형을 찾기 위해 기꺼이 붕괴되면서 말이다

"이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너무 맞는 말인데 뭐라고 정의하기가 힘들다. 결국 행복한 시간이란 타인과 나의 적당한 거리감이 유지되었을 때인 것 같은데. 그 거리감을 좁히기 위해 때로는 멀어지기 위해 어떤 하나는 결국 붕괴시키고 만다. 결국 건강한 관계를 위해서는 상대를 위한 완벽한 희생도 완벽한 이해도 필요치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때 당시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이 책을 읽었고 그게 누구든 나를 보호할 수 있는 거리를 둬야겠다 생각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의 나는 여전히 관계의 거리를 위해 또 다른 것을 붕괴시키고 있는 듯하다.


나 자신을 스스로 괴롭히며 살고 있다면 한 번쯤 이 책을 읽어 보면 좋을 것 같다. 밑줄쳐 놓은 글들을 보니 나 역시 이 책을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별표까지 쳐 놓은 하나의 문구
 

나는 나 혼자 가리라

다시봐도 가슴에 인두로 표식을 남기듯 내 마음속에 새기고 싶은 말이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