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114페이지로 된 중편소설이다.
직전에 읽은 책이 너무 어렵고 내용이 많아 독서 체증에 걸린 느낌이었는데 이 책은 그 답답함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소화제 같은 책이었다.
이 책의 주인공 펄롱은 석탄과 나무를 판매하는 일을 하며 가족과 평범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과의 관계도 원만하여 어느 집에 배달을 가든 호의적인 대접을 받는다.
모두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라 들뜨고 분주한 때 팔롱은 수녀원으로 석탄 배달을 가게 된다.
그 수녀원은 기업 여학교와 세탁소를 함께 운영하며 그 지역 생태계에 많은 영향을 주는 곳이다.
그런 수녀원에 배달을 갔던 펄롱은 그곳에서 여자 아이들을 학대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그 아이들을 도와주면 자신의 딸들이 그 지역의 실세인 수녀원으로부터 어떤 불이익을 당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곳에서 여자 아이를 데리고 나오게 된다.
자신의 평범하고 안전한 삶을 위하여 부당한 일들을 외면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상황에서 그 안전한 선을 넘어선 펄롱은 사람들의 바뀐 태도를 마주하게 된다. 마주치면 인사하던 사람들 중 누군가는 펄롱을 보고 외면하고 누군가는 욕을 한다.
사람들은 크리스마스에 여자 아이들을 학대하는 수녀원에서 미사를 드리고, 흰 눈이 오는 날 석탄의 검댕이가 묻은 여자 아이는 가까이하면 안 되는 것인 양 외면하고 욕을 한다. 얼마나 부조리한 상황인가...
이런 마을에서 굳이 안 해도 될 선택을 한 펄롱 때문에 펄롱과 펄롱의 가족은 또 다른 시련을 맞닥뜨려야 할지도 모른다.
[독서 노트]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을 이미 지나갔다. 하지 않은 일,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일 평생 지고 살아야 했을 일은 지나갔다.
펄롱은 생각했다. 언제나 쉼 없이 자동으로 다음 단계로, 다음 해야 할 일로 넘어갔다. 멈춰서 생각하고 돌아볼 시간이 있다면, 삶이 어떨까, 펄롱은 생각했다. 삶이 달라질까 아니면 그래도 마찬가지일까- 아니면 그저 일상이 엉망진창 흐트러지고 말까?
주고받는 것을 적절하게 맞추어 균형 잡을 줄 알아야 집 안에서나 밖에서나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단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특권임을 알았다.
보통 사는 건 다 거기서 거기라고 한다.
요즘 SNS때문에 화려하고 잘 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많아 보이지만 그 사람들도 문제 한 두 개쯤은 갖고 있을 것이다. 운이 좋아 그 문제를 잘 넘기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해 그 문제에 잠식되어 가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누구도 운이 좋지 않은 사람들에게 운이 되어주고자 하지 않는다. 펄롱의 아내처럼 말이다.
어쨌든 간에, 그게 우리랑 무슨 상관이야? 우리 딸들은 건강하게 잘 크고 있잖아?
사람이 살아가려면 모른척해야 하는 일도 있는 거야. 그래야 계속살지
우리가 가진 것 잘 지키고 사람들하고 척지지 않고 부지런히 살면 우리 딸들이 그 애들이 겪는 일들을 겪을 일은 없어. 걔들은 우리 애들이 아니라고.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거기 일에 관해 말할 때는 조심하는 편이 좋다는 거 알지? 적을 가까이 두라고들 하지. 사나운 개를 곁에 두면 순한 개가 물지 않는다고.. 잘 알겠지만..
펄롱의 아내가 한 말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안전한 삶을 위해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를 외면한다.
특히 그 일을 행했을 때 사회의 안전 선을 넘어 질타와 무시의 대상이 되고 어떤 불이익을 당하게 될 것이 예상된다면 누구도 굳이 그 일을 하지 않으려 한다.
이 책을 읽는 내내 프레스기로 마음을 꾹!! 누르는 느낌이 들었다. 다 읽고 난 뒤 '후~' 그제야 프레스기에서 벗어난 것 같았지만 압축된 감정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숨기고 있던 비겁한 나를 마주하는 것 같아 불편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펄롱의 선택에 안도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서서히 멀어지는 감정은 안도감과 아쉬움이 함께 느껴졌다. 더 붙잡고 싶은 감정이나 머물지 않는 감정이길 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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